'증발'한 이준석, 부산행.. 초유 사태에 발칵 뒤집힌 국민의힘
이 대표는 전날 당내 초선 의원 5명과 술자리를 갖던 오후 8시쯤 SNS에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“그렇다면 여기까지”라는 글을 올렸다. 곧 기자들이 연락을 시도했으나 이 대표의 전화기는 꺼져 있는 상태였다.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이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던 한 언론사 주최 행사를 비롯, 모든 공식 일정이 취소됐다고 공지했다. 이 대표의 휴대전화는 하루 종일 꺼져 있었고, 당대표실 관계자들도 대부분 연락을 받지 않았다. 당대표가 공개 활동과 당무를 무기한 접은 채 사실상 ‘증발’한 것이다. 이 대표가 당대표직 사퇴까지 고려 중이라는 이야기가 도는 등 온종일 루머가 무성했다.
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자택에 머무르던 이 대표는 오전 10시쯤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 당원협의회 사무실에 들렀다 1시간여 만에 떠났다고 한다. 이후 행적이 묘연했다. 이날 밤이 돼서야 이 대표가 오후에 김용태 최고위원, 김철근 정무실장 등 측근들과 함께 부산으로 이동한 사실이 알려졌다. 이를 두고 이 대표가 ‘장기전’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냔 관측이 제기됐다. 2016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친박계의 이른바 ‘진박공천’ 등에 반발해 대표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간 ‘옥새파동’을 연상케 한다는 말도 나왔다.
권성동 사무총장이 이날 이 대표를 만나러 노원병 당협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30여분 만에 소득 없이 발길을 돌렸다. 그는 당협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“윤 후보가 이 대표를 직접 만나 뵙고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듣고 오라고 지시했다”며 “지금 연락이 안 된다”고 털어놨다. 권 총장은 또 “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얘기에 의하면 (이 대표가) ‘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’고 했다 한다”며 “대표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고, 내일이라도 기회가 되면 만나볼 의향이 있다”고 덧붙였다.
당 안팎에선 각각 이 대표를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오는 등 혼란이 벌어졌다. 윤 후보의 측근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참석 후 취재진에게 “지금 분란의 요지는 (이 대표가) ‘왜 나를 빼느냐’는 것”이라며 “이런 영역 싸움을 후보 앞에서 하는 것”이라고 일갈했다. 반면 하태경 의원은 SNS를 통해 “이 대표 없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은 대선 승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”며 이 대표를 엄호했다.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홍준표 의원은 자신의 청년 온라인 플랫폼 ‘청년의꿈’에서 “당대표를 겉돌게 하면 대선을 망친다”고 윤 후보를 우회 비판했다. 당 중진들도 잇따라 글을 올려 이 대표를 질타하거나 옹호했다.
김기현 원내대표는 오전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“선대위 구성을 포함해 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들께 다가가는데 있어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”며 “정책과 인물 혁신에서 국민의힘 모습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비치고 있는 것 같아 대단히 안타깝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”고 말했다.
선대위 ‘원톱’을 제안했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합류가 사실상 불발된 데 이어 이 대표까지 옥새파동을 연상케 하는 잠적에 들어가면서 윤 후보의 리더십이 중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. 윤 후보는 충청권 방문 이틀째인 이날 충북 청주에서 취재진으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고는 “저는 후보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뿐”이라고 답했다. 그는 ‘선대위 내부 잡음과 이 대표 패싱 논란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’는 물음엔 “저도 잘 모르겠다”고만 했다.
김주영 기자 bueno@segye.co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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