"안철수 후보가 고발한 후 강의 '뚝'..이젠 비판하기 전 자기검열하게 돼"
안 후보 정책에 “없는 개념” 지적
고발 사실만으로도 경제적 타격
무죄 나와도 회복하기 힘들어
“개인 발언 위축 땐 사회적 손해”
“이제는 비판하는 게 두려워지더라고요.”
지난 5월29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개인 작업실에서 만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. 이 위원은 그간 자신의 전문 분야인 국가 재정과 관련해서는 정부 기관이나 주요 정치 인사를 거침없이 비판해왔지만 이날 만난 이 위원은 “방금 발언은 수정하고 싶다”, “이 말은 이런 단서를 붙여 달라”와 같은 말을 거듭하며 자신의 발언을 다듬었다.
이 위원은 지난 3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(현 국민의힘 분당갑 국회의원 후보)로부터 형사 고발을 당했다. “대선 후보의 사회적 신뢰를 훼손했다”는 것이 이유였다.
당시 안 후보는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 ‘D4’라는 국가 부채의 종류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, 이를 두고 재정전문가인 이 위원이 “안 위원장이 없는 개념을 만들었다”며 지적한 것이 발단이 됐다.
고발장이 접수되고 3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, 이 위원은 “안철수 후보의 고발 이후 의회 강의가 뚝 끊겼다”고 털어놨다. 민간 전문가인 이 위원은 주로 외부 강의와 연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, 안 후보에게 고발당한 이후 법적 제재와 무관하게 경제적인 타격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.
이 위원은 “이전부터 정당 세미나나 국회의원 모임, 지방 의회 등을 대상으로 꾸준히 강의를 해왔는데 고발 사실이 알려진 이후 의회 강의 섭외가 한 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”며 “의회 사무처가 특정 정당에 고발을 당한 강사를 섭외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”고 말했다.
해당 고발 건에 대한 조사는 현재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진행 중이다. 처벌은커녕 아직 기소 여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. 그러나 이 위원은 이번 일을 통해 유력 정치인의 고발은 법적 처벌과 무관하게 피고발인에게 사회적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했다. 이 위원은 “지금도 법적인 부분은 전혀 두렵지 않다”며 “하지만 무죄가 나와도, 기소가 안 돼도 유력 정치인이 고발만 하면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긴다”고 말했다.
사회적 제재는 결국 개인의 발언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. 그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(SNS) 계정과 언론을 통해 국가 재정 운용을 적극 비평해왔던 이 위원도 이젠 발언 전 ‘자기검열’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.
이 위원은 “재정을 연구하면서 정파를 가리지 않고 실명 비판을 해왔지만 이젠 두려워졌다”며 “앞으로는 누가 재정과 관련해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해도 비판하기 주저된다”고 말했다.
이 위원은 그럼에도 부담을 무릅쓰고 자신이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“잘못된 학습효과를 막기 위해서”라고 설명했다.
이 위원은 “유력 정치인은 ‘고발만 하면 이긴다’는 잘못된 교훈을 얻고 시민사회는 ‘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고발만 당하면 낙인과 불편함 얻게 된다’는 잘못된 학습효과가 점점 더 커지면 우리 사회는 정말 엉망이 될 것”이라고 말했다.
이창준 기자 jchang@kyunghyang.co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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